[비즈한국] 2023년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 취임 1주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비즈한국은 지난 1년간 한국 노동 현장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라진 노동자들’이다. ‘노동’이 사라진 건 아니다. ‘노동자’가 사라졌다. 정규직에서 기간제로, 지상에서 지하로, 직관적인 이름에서 세련되고 모호한 명칭으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빠르게 감춰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사라지게 만들까. 일그러진 노동 현실을 짚어본다.
#8년째 하남 음식물폐수처리장에서 일하는 이재식 씨는 근무 3년 차부터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지하에서 일하면서 비타민D 부족 상태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비타민을 챙겨 먹고 매년 두 번 비타민D 주사를 맞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하남 하수처리시설에서 근무하는 김수연(가명) 씨는 피부병에 걸려 정기적으로 레이저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에선 햇빛을 봐야 한다고 하지만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 근무지가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마포 소각장에서 근무하는 환경엔지니어(폐기물처리 설비기기 및 장치를 조작하는 환경설비기술자)들은 소각장 지하화 소식에 걱정이 크다. 이미 체내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된 적 있는 이들은 시설이 지하화될 경우 건강이 더 악화되고 화제 위험도 증가할 거라고 말한다.
이 씨와 김 씨가 근무하고 있는 하남시 처리시설은 2015년 전국 최초로 종합 환경기초시설(하수처리시설·폐기물처리시설·소각처리시설·재활용선별시설 등)을 지하화하고 지상에 유니온파크를 조성했다. ‘혐오시설’을 랜드마크로 만든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남 환경기초시설의 환경엔지니어들은 건강 상태 이상과 화재 위험을 호소하지만, 지하화가 주민 반대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최근 1년간 환경기초시설의 지하화 추진이 급격히 늘어났다. 2026년부터 생활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고, 원래 있던 시설의 사용 연한이 다해가면서 지자체마다 환경기초시설 증설과 신설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주민 반대를 완화하기 위해 시설의 ‘전면 지하화’를 내세우고 있다.
#5년간 화재 700건, 산재 6000명 “지하화되면 더 늘어날 것”
환경기초시설은 구조적으로 화재 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량의 폐기물이 모인 탓에 가스가 발생해 자연발화가 일어난다. 소각장이나 선별시설 등에서 며칠씩 화재가 나는 이유다. 진압도 어렵다. 최근 경북 안동에 있는 소각장에서는 5일 동안 화재가 계속되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불은 더 자주 난다. 소각장에서 근무하는 환경엔지니어 양우연 씨는 “1년에 2~3번 정도 화재가 난다. 쓰레기 폐기물에서는 자연발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지상에 있더라도 순식간에 연기가 꽉 찬다. 그래서 소각장에서는 화재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크레인으로 바로 끄는 작은 불도 굉장히 많이 난다. 밖에 알려진 것보다 실제로 일어난 화재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비즈한국은 이 같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최근 5년간 환경기초시설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와 산업재해를 전수조사 했다.
환경기초시설은 고용노동부 분류상 위생시설에 포함되는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위생시설에서 일어난 화재는 678건에 달했다. 이 중 폐기물처리시설은 251건, 폐기물재활용시설은 298건이었다. 이는 소방청에 정식으로 접수된 화재가 기준이어서,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작은’ 화재를 고려하면 더 많은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5년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위생시설 재해자는 6336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사망자가 151명에 이른다. 하남 환경기초시설에서 근무하는 A 씨는 “지하에서 근무하느라 병에 걸렸지만, 산재(산업재해) 인정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신청하지 못했다. 명확하게 원인이 나와야 하는데 그걸 증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함께 일하는 환경엔지니어 B 씨 역시 “질병 같은 경우 (산재로) 인정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병에 걸려도 산재 신청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환경기초시설 인근 주민에 대해서는 정기적으로 건강영향조사 사업을 진행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선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산재 인정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혐오시설’ 이유로 지하화 추진…노동자 건강은 더 악화
매년 수많은 화재 사고와 산업재해가 환경기초시설에서 발생하지만 노동 환경 개선이나 안전 대책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기피시설,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점점 지하로 사라지고 있다. 모든 시설이 지하화된 곳은 현재 하남 한 곳이지만, 최근 양상을 보면 대부분의 증설·신설 환경기초시설이 지하화될 전망이다.
환경기초시설의 증설이 급해진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주민 반대를 막기 위해 지하화를 추진한다. 혐오시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지하에 건설하고, 지상에는 주민들이 이용할 공원 등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환경기초시설을 지하에 설치해도 밖으로 배출되는 유해물질 등은 여전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차이가 없다. 오히려 지하에 있는 시설 내부 환경만 열악해질 따름이다. 홍천 공공재활용기반시설에서 근무하는 최원현 씨는 “지하화가 되면 시설 내부는 미세먼지와 부유세균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햇빛이 없어 면역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화재에도 취약하다. 노동자들에게는 악영향밖에 없지만, 근본적으로 시설이 지하에 있든 지상에 있든 다를 게 없다. 시설에서 배출하는 가스를 지상으로 보내는 건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른 건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고 토로했다.
환경기초시설의 지하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법적으로 설치에 문제가 없어도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면 추진이 어렵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환경에는 다른 부분이 없어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사실 지하에 설치하는 게 비용도 2배 이상이 더 든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환경기초시설의 지하화가 결국 재난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금현아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폐기물 처리 작업은 비교적 시민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노동환경이 더 열악한데, 여기서 지하화되기까지 한다. 환경기초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라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다. 시민들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지상에 있는 환경기초시설도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미세먼지나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에 노동자가 그대로 노출되는 현실이다. 환경기초시설 주변 주민을 위한 유해물질 배출허용기준은 있는데, 시설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안전기준은 없을 정도로 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등한시하고 있다. 환경기초시설을 지하화한다는 건 유해물질 위험에 더해 화재나 수해 위험까지 노동자에게 떠안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와 모니터링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철용 영남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도 환경기초시설을 지하화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종사자들의 건강영향조사가 정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위해성을 규명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먼저 환경기초시설의 노동환경과 건강영향에 대해 모니터링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 책임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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