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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전세금 안 주면 신용불량자 전락? 전세자금대출 허점 노출

대출 땐 금융사가 집주인에 직접 지급, 상환 땐 세입자 책임…금감원 "개선 논의 없어"

2018.04.06(Fri) 17:03:05

[비즈한국] # 서울 직장 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혼자 살게 된 지 6년째를 맞은 직장인 A 씨(30).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33㎡(10평) 미만 원룸에서 4년 동안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0만 원에 살았던 그는 2년 3개월 전, 전세자금대출로 7000만 원을 대출 받아 보증금 1억 원의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월세 60만 원을 내는 것보다 15만 8000원의 전세자금대출 이자를 납부하는 게 매달 45만여 원이나 절약할 수 있었지만, A 씨는 “다시는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싶지 않다”고 얘기한다. 

 

# 자취경력 16년차인 프리랜서 B 씨(36)는 지난해 10월, 자신이 가진 5000만 원에, 1금융권에서 받은 전세자금대출금 1억 3000만 원을 더해 1억 8000만 원짜리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여의도의 60​(18평)형 오피스텔에 살면서 매달 30만~40만 원 상당의 전세자금대출 이자(변동금리)를 납부하는 B 씨는 처음 “월세보다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 씨와 같은 전세자금대출 피해사례를 접하고 나서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2년 후를 걱정하고 있다. 

 

#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60​(​15평)형 투룸에서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70만 원에 살던 C 씨(34)는 지난 1월,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봤다. 국민주택기금과 1금융권 은행을 직접 돌아다녔던 그는 인터넷에 ‘전세자금대출’을 검색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전세자금대출을 포기한 그는 월세계약을 2년 연장했다. 

 

집주인을 잘못 만나면 전세자금대출권자의 과실이 없음에도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 그래픽=김상연 기자

 

전세자금대출의 제도상 허점으로 인해 세입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해 주의가 요망된다. 전세자금대출은 대출 실행 시 금융기관이 집주인에게 대출금을 납입하지만, 상환 시에는 세입자가 금융기관에 대출금을 납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전세계약 만료 후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금전적 손해는 세입자가 떠안아야 한다. 

 

앞의 A 씨는 전세계약 만료 3개월 전 집주인에게 “전세계약이 끝나기 전 전세금을 돌려받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지만,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전세금을 구하지 못했다”며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2018년 2월 3일까지 전세금 1억 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전세자금대출은 대출 시 집주인에게 금융사가 직접 대출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상환 시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세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전세자금대출 원금 상환일 하루 전인 2월 2일 A 씨는 은행을 찾아 사정을 설명했지만, 은행 직원은 “전세자금대출 상환 시에는 대출권자가 직접 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며 “대출상환일이 2월 3일이지만 토요일이므로 2월 5일까지 갚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 자리에서 A 씨는 은행 직원으로부터 전세자금대출 연장을 권유받았다. 전세자금대출은 계약기간은 기본 2년으로 4회까지 연장할 수 있어 최대 10년까지 가능하다. 연장 시 회당 10만 원의 수수료(보증보험료)를 내야 한다. 

 

고민 끝에 A 씨는 대출 연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대신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냈고, 2월 5일 집주인은 전세금 7000만 원을 A 씨 통장으로 입금했다. 마음고생을 한 A 씨는 “다시는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월세살이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위와 같은 피해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제날짜에 주지 않아 낭패를 보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측은 전세자금대출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ccy6**** 아이디를 쓰는 한 누리꾼은 “전에 살던 집주인이 전세자금대출을 갚지 않아 아내가 신용불량자로 등록된다고 연락이 왔다”며 N 포털에 고민을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의 명의인은 임차인 본인이다. 집주인이 전세자금대출을 갚지 않아 임차인이 신용불량자 등록, 이자, 연체료를 부담할 경우, 임차인은 집주인을 상대로 손해를 입었음을 주장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다만, 민사소송 제기 전 내용증명을 발송해 집주인으로 하여금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비용 절감 측면에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결국 소송하는 수밖에 없다”고 답변을 달았다. 

 

전세자금대출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제도적 개선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악덕 집주인을 만나 전세자금대출권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직까지 금융감독원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를 논의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반면 전세자금대출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 제도가 전세자금대출권자의 신용등급 문제까지 감안해서 마련된 것으로 안다”며 “전세자금대출과 관련된 모든 유관 부서에 확인해보고 좀 더 자세한 답변을 하겠다”고 말했다. 

 

전세자금대출금을 금융사에서 집주인에게 바로 송금하는 것처럼 상환 시에도 집주인이 은행에 직접 납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원 전세자금대출 담당자는 “은행에서 집주인에게 전세자금대출금을 바로 보내는 건 대출권자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챌 수 있어 마련한 제도”라며 “전세자금대출권자 명의로 빌린 돈이기 때문에 상환 시에는 전세자금대출권자가 집주인에게서 돈을 받은 후에 은행에 갚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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